연세대 문과 대학원 입시에 대한 짧은 경험담 & 학업계획서

올해 9월부터 대학원에 가게 되었다. 어릴 때 특별히 공부나 시험에 소질이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도 내 스스로가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사실이 얼떨떨하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학부 공부는 계명대학교에서 경영정보학으로 끝냈고, 학부시절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둔 것으로 무역회사와 IT기업 몇 군데에서 밥벌이를 할 수 있었고, 마지막에 다니던 회사가 거의 정리 수순을 밟고 있을 때 그동안의 관심과 적성을 살려 한국어 강사 준비를 한 후 퇴사하였다. 콩알 만한 학원에서 정식으로 한국어 강사 커리어를 시작해서 더 큰 어학원까지 발전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왔다. 대학원은 그 발전을 거듭하다보니 또 다음 도전 거리를 찾게 되면서 시작된 것 같다.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게 작년 말이었는데, 외국어로써의 한국어 교육업에 약 3년 간 머물면서 아쉬웠던 점이나 앞으로 해보고 싶었던 건 많았지만 막상 ‘학업계획서’라는 한 편의 글로 승화할 만큼 구체적이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박식한 분야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에 한 번 좌절을 했었다.

아무튼 다른 사람들은 학업계획서 쓰는 데 보통 한 두 달 정도 걸렸다고 하는 것 같던데, 나는 넉 달에 걸쳐서 준비했다. 우선 나는 1차적으로 학부에서 뽐낼 만한 간판이 없었으므로 이곳에서 건질 것은 내가 졸업한 학과와 내가 앞으로 연구할 분야와의 연결점이라고 생각하고 이 연결점을 찾는 데에 집중했다. 그리고 글이라는 게 앉아 있는 시간만큼 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보다 명석하지 못하다는 전제하에 더 일찍 글을 시작했다. 글이 안 써지면 1~2주 정도 묵혀두었다가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니 구질구질한 미사 어구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여서 실제로 글을 쓴 시간을 합해보면 약 한 달밖에 안 되지만 그만큼 여유를 가지고 썼다. 붙고 싶었기 때문에.

2020년 후기 입시는 대략 이랬다. 참고하시길!

원서 접수: 5/11(월)~5/15(금)
서류 합격자 발표: 6/12(금)
면접일: 6/20(토)
최종 합격자 발표: 7/3(금)

내 생각에 학업계획서를 쓸 때 여유를 가지고 쓰면 좋은 점 중에 하나가 글을 쓰면서 점점 더 대학원에 가야할 목적과 목표가 선명해져서 면접 준비도 한꺼번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정상인 것 같고, 순수한 학문적 열정이 있다면 대학원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깊게 공부를 해본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읽는 상대방의 입장과 학과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쓴다면 학업계획서는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 안의 열정을 글이라는 단어들의 집합 안에서 녹여낸다는 것이 말도 안되게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글의 틀을 먼저 잡았다. 입시 전문가 선생님들의 블로그와 실제 입학 경험담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받아 적은 후 목록화하고, 내 글 안에서 그런 것들을 찾을 수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썼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스펙 면에서는 다른 학생들보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글에 사활을 걸 수 밖에 없었다.

아래는 내가 학업계획서를 준비할 때 참고 했던 자료이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봄. 🙂

학업계획서란?

자신이 지망하는 대학의 학문 분야에 대해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 분야에 대한 열정과 안목을 통하여 자신의 가능성을 어필하는 글. 글쓰기 능력, 기호도, 가치관, 인성, 재치, 목표를 향한 열정, 창의성, 사고의 과정과 깊이뿐만 아니라 지원자의 학업수행 능력까지도 평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좋은 학업 계획서는 지망 동기에서 선명한 인상을 주어야 한다. 또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해야 하며, 열정과 진지함이 깃들여 있어야 한다. 즉, 기초가 특특하고 소질과 적성이 맞으며 학문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패기가 드러나 가능성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학업 계획서이다. 그리고 미래의 진로 희망에 대해서도 믿음이 가야 한다. 

쓴 계획에 의거하여 공부하면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로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글이다. 학업 계획서는 그런 믿음을 갖게 하는 글이다.

학업계획서에서 읽혀야 하는 것들

– 지원자의 지원 동기가 확실한가?
– 그 분야를 전공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은 갖추고 있는가?
– 그 분야의 공부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려는 기본 자세가 되어 있는가?
– 지망학과의 학문적 특성을 알고 있는가?

학업계획서의 전체 구성 요소

– 지원학과가 본인의 적성, 소질, 장래희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가?
–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고, 그 학과에 대한 진학 열정이 다른 학생보다 강한가?
– 전공 선택 이유를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기술했는가?
– 왜 선택했는지, 왜 흥미를 느꼈는지 직접적인 동기를 구체적으로 서술했는가?- 학과에서 요구하는 특정과 관련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거나 또는 자신의 특성과 능력을 파악하게 된 동기를 솔직하게 기술했는가?
– 자기소개서에서 기술된 다른 항목들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유지되는가?
– 미사 여구나 추상적인 어휘들을 과하게 사용하지는 않았는가? 일화를 중심으로 진솔하게 작성했는가?
– 지망하는 학문 분야의 안목을 보여주고 있는가?
– 얼마나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글을 통해 알 수 있는가?
– 얼마나 준비가 철저했는지를 글을 통해 알 수 있는가?

재학 중 학업계획에 대해서 글을 쓸 때 주의해야 할 점

– 장단기 계획으로 나누어져 있는가? – 진학 이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할 분야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되 기초적인 학습에서 전문적인 공부로, 단기 계획에서 장기 계획으로 학업을 중심으로. 
– 전문 분야에 대한 장황한 설명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오히려 교수들에게 건방지게 보일 수 있음. 조금 공부가 부족하더라도 겸손하고 성실한 인상을 주는 것을 더욱 선호함. 그런 면에서 학문의 기초 영역에 해당되는 공부 계획을 언급했는가?
– 자신의 적성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자격증은 어떤 것이 있는지 공부계획을 밝혔는가?
–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

졸업 후 희망 진로 및 포부

– 학문에 게으르지 않고 자신의 발전에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을 넣었는가? 장황한 것 보다 간략하게.
– 자신의 선택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설명했는가?
– 해당 학과에서 배운 지식을 사회에 나가면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드러나는가?
– 자신이 선택하는 직업에 대한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 해당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을 갖고 삶을 영위하겠다는 마음을 드러내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직업만 언급하면 진부하니까)

마지막 확인

– 전공과 관련해 실천 가능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 전공에 대한 내용을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서술한다.
– 문장, 문맥, 어휘 등을 여러번 수정해 읽기에 매끄러운 글이 되도록 한다.
– 자신이 쓴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어야 한다. 면접 시 질문 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 솔직하게 쓴다.
– 해당 분야에 헌신하고자 하는 지원 동기와 열의가 있어야 한다.
– 체계성과 실현 가능성을 갖춘 자신의 굳은 의지가 드러나야 한다. 
– 학문의 기본 자세를 지녀야 한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다. 너무 지나치게 해당 직업만을 의식하고 있다면 이는 대학이 학문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직업 양성소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된다. 따라서 너무 지나친 실용성 강조는 금물. 같은 의미로 보아 한 분야에 대한 지나친 집착도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 학문에 대한 기본 자세를 지니고, 겸손함과 성실함으로 열심히 해나가겠다는 뜻의 표현이 좋은 느낌을 준다.

외국어를 잘 하는 방법 (?)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아무래도 영어로 설명을 해야 할 일이 잦다. 그러다 보니 어떤 영미권 학생들은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 하느냐고 물어보는데, 그 때마다 드는 내 생각들을 대충 나눠보니 둘로 나뉜다. 하나는 ‘내가 그렇게 영어를 잘 한다고???? 세상에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또 하나는 ‘아하, 너도 한국어를 이 정도는 하고 싶은 거구나!’

출처: Pinterest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이 하는 대부분의 질문이 ‘어떻게 한국어를 잘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정말 신기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물음에 대한 정답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며, 그 가장 단순하면서도 모두가 아는 방법을 잊어 버린다는 것이다.

꾸준함!

나는 오늘 꾸준함의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느끼는 중이다.

오전 온라인 수업을 산뜻하게 마치고 다음 수업 준비를 위해 방을 옮기려는 그 순간. 갑자기 왼쪽 허리 춤에서 전깃불이 번쩍하는 느낌이 들더니 곧 머리 꼭대기에서 허리까지 피 대신 온 몸에 뜨거운 식초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찌릿찌릿 받았다. 그리고는 온갖 종류의 비명을 지르면서 식탁 쪽으로 걸어 갔는데, 걸을 때 마다 허리에 힘이 조금이라도 실리면 허리에서 전기가 짜릿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남자친구가 금방 달려와서 따듯한 찜질과 마사지를 번갈아 가면서 해줬고, 진통제와 근이완제까지 꿀꺽 삼키고 나니 몇 시간 뒤 부축을 받아서 일어날 정도는 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허리 쪽에 오래된 척추 측만이 살짝 있다. 어릴 때는 턱을 괴는 습관이 있었고, 지금은 음식을 한 쪽으로만 씹는 습관을 못 고치고 있으며, 지하철에서 자리가 없이 서 있어야 할 때는 심지어 짝다리로 서 있는다. 가끔 나도 내 자세를 인지할 때가 있는데, 그 땐 짝다리 방향을 바꾸어 주는 것이 자세 교정을 위한 노력의 전부이다.

3~4년 전의 나는 무에타이와 헬스를 즐기는 도시 여자로서 청바지를 입은 내 뒷태가 스스로 봐 줄만 하다고 생각했고, 옷을 사러 갈 때면 가끔은 배꼽이 드러나는 상의를 입어서 내 복근을 자랑하고 싶은 충동도 있었던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전신 근육 운동을 꾸준히 하니 그 때는 코어가 아주 튼튼했고, 내 평소 자세가 어떻든 간에 내 허리는 어떠한 시련에도 거뜬히 버텨 주었는데…

이게 웬걸…

한국어 가르친다고 매일 앉아 있고, 운동은 끊은 지 매우 오렌지… 그렇게 내 허리 근육은 무너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ㅠㅠ ‘오늘은 피곤하니까, 하루는 괜찮겠지’, ‘3개월 정도 운동 쉬는 거 별거 아니지’, ‘한 1년 쉴 수도 있지!’라고 나에게 끊임없이 면죄부를 줬었는데… 뚜둥… 이제는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아무튼, 운동은 허리 통증이 낫는 순간부터 다시 할 생각이다!

나는 외국어 공부도 내 허리 건강과 비슷한 상황이지 않겠나 싶다.

왜냐하면, 외국어라는 게 사실상 한 문화의 습관과 약속이 모인 집합체이기 때문에 꾸준히 익히지 않으면 내 허리가 건강을 잃어버리듯 외국어 실력도 사용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금새 실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몸의 근육을 키울 때에도 작은 것에서부터 꾸준히 늘려 나아가야 후에 더 큰 무게를 손에 쥘 수 있듯이, 외국어 공부도 머리의 근육을 키우고 기억 세포들을 연결하는 물리적 과정이 꼭 동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출처: 핀터레스트

최근의 일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내가 터키 여행을 가기 전에 했던 터키어 공부이다. 원래는 터키에 가기 6개월 전부터 터키 원어민 선생님을 알아보고 수업을 들으려고 했었는데, 온갖 핑계를 대며 대실패. 결국 터키에 가기 일주일 전 남은 4회 수업 티켓만 소진하고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하자!’가 발동이 되는 바람에 다시 열공 모드로 전환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한 없이 보면 볼 수록 생소한 발음과 글자를 가진 터키어도 충분히 익힐 수 있었다. 마음을 먹고 일주일 동안 계속 보고, 듣고, 따라하니 충분히 이해하고 알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터키에 가서 공부한 것들을 120% 써먹고 돌아왔다! 자그마한 동양 여자애가 터키어로 “한국에서 왔어요. 조금만 깎아주세요.”라던지,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같은 말을 꽤 괜찮은 터키어 발음으로 외쳐주니 안 깎아 줄 수가 있나! 그렇게 나는 자연의 당연한 이치를 서른 두살에 다시 배운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아, 이렇게 하면 5개 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가능하겠다!’하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영어를 배운 과정도 운동이나, 터키어 학습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나는 절대적인 시간을 꾸준히, 그리고 많이 투입했다. 비록 일주일 동안이긴 했지만 매일 한시간씩 몰입해서 듣고, 따라하고, 써 보는 그 절대 공부 시간은 설렁설렁 공부한 한 달보다 더 농축된 것이었던 것이다. 나의 영어 공부 기간도 그 처음 시작과 끝을 이어보면 자그마치 10년이 넘는 세월이다. 사람들이 보는 이 10년의 기대치는 물론 높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그나마 이 정도의 실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몰입 학습 기간이었던 첫 2년 이후에도 끊임없이 방법이나 도구를 바꾸어 가면서 나는 한 번도 익히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래서 나는 ‘꾸준함’을 믿는다.

학생들이 “선생님, 어떻게 중국어 공부를 하세요?”라고 물어봐도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냥 나는 “그동안 공부하느라 쓴 시간이랑 돈이 너무 아깝다!!”라며 포기하지 말자고 한다.

제발 포기하지 말자! 나도 포기하지 않을테다. 내 공부, 니 공부 전부!

Hodie mihi, cras tibi

사춘기의 그 뜨거운 불만의 에너지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 당시의 저는 뚜렷하게 기억나는 이유 없이 부모님을 향해 독설과 냉대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중략-

인간이란 이렇게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몰랐던 것처럼, 오늘의 내가 미래에는 어떤 모습일지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인간은 타인을 통해 기억되는 존재입니다. 어머니는 관이 되어 제게 기억으로 남았고, 제 죽음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내일은 저 역시 관이 되어 누군가에게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또 그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게 할 겁니다. 인간은 그렇게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죽음으로써 타인에게 기억이라는 것을 물려주는 존재입니다.

** 출처: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너무나 부족했던 나를 그렇게 무던히도 지켜봐주고 인내해주고 그 시간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다. 지금은 예전처럼 아무때나 편하게 연락할 수 없지만 나의 성장과 성숙에 있어 가장 중요한 누군가와의 이별이 필연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부쩍 든다. 왜냐하면 나는 사랑받지 못해 항상 자존감이 없는 채로 매사에 날이 선 아이였고, 때로는 오만하고 무례하기까지 했지만 너는 곁에서 항상 사랑으로 나를 지켜봐주기만 했거든. 그러니 내가 얼마나 못났는지 깨닫기 까지는 너를 떠나야만 알 수 있었겠지. 희미하게 보이던 내가 점점 객관적이고 선명한 시선에서 보이기 시작하니 가장 먼저 나는 내 모습부터 숨기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했던 모든 행동들은 모두 오해를 샀지만 그렇게 하며 나는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지금은 정말 많이 고맙다. 

어제의 나를 탈피한다

콘텐츠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는 만큼, 정체되어 있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짙다. 멈추어 있는 것은 현상 유지가 아닌 퇴보라는 생각, 반응에 대한 확신을 담보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존재한다. 변화를 회피하는 것은 잠깐의 편안함을 미끼로 한 덫에 스스로 발을 내딛는 행위로 규정한다. ‘탈피하다’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파괴하다’처럼 뭔가 송두리째 뜯어고치는 강압적인 뉘앙스는 없으면서도, 기성에서 벗어나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어감을 품고 있다. 기존의 형태를 고스란히 포용하는 듯한 따듯한 변화다. 

박현민, 빅이슈코리아 편집장

‘탈피’라는 말을 얼마전 한국어 수업에서도 다루면서 이 것이 옷 가게의 ‘탈의실’에서 쓰는 그 ‘탈’자와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라고 설명해주고 ‘벗다’는 뜻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진짜 옷을 벗는 물리적인 뜻으로도 사용되지만 때때로는 모든 언어가 그렇듯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표현으로도 쓰인다고 말해주었다. 그러고는 예문으로 ‘어제의 나를 탈피하고싶다.’고 칠판에 적었다. 학생이 알아 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사실 그 예문은 내가 거의 매일같이 가슴속으로 생각하는 말이어서 너무 자연스럽게 나온 한 줄 이었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그래서 여러가지 방면에서 나도 어제의 나를 탈피하고자 한다. 내 몸 나이는 나도 못느끼는 사이에 갓 30대를 찍었다. 만으로도 30년 다 살가면서도 종종 아직도 무엇을 하려고 하면 덜컥 겁부터 나고, 때론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져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어쩔 때는 내 작은 것 하나 바꾸려는 시도조차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을 하기 때문에 내 몸인데도 내가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 지 몰라서 난리다. 그래서 인생이라는게 평생에 걸쳐서 ‘나 사용법’을 알아가는, 즉 진짜 내 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하는 가보다. 

자꾸 예전에 나와 비교해보려는 습관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전과 다른 점은 내 능력 밖의 일에 대해서 욕심을 부리는 일이 줄어들긴 했다. 나쁜 습관은 정말 고치기 힘들어서 아직도 요놈들을 완전히 버리지 못해 가끔은 괴로워 죽을 것 같아도 그 죽을 것 같은 순간의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이대로 40세까지 간다면 ‘불혹’에 가까워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보인다.

어떻게 흘러흘러 지금까지 오다보니 말을 하고 가르치는 일이 업이 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말에 있어서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왜곡되지 않고 복잡하지도 않으면서 또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필요에 의한 욕심이 생겼고, 글은 쓰고 나면 계속 남는 것이기도 해서 당연지사 잘 쓰고 싶다. 

학창시절에 매일같이 붙어다니던 친구 말로는 내가 당시에 거의 광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투의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 때는 참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발전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때 술과 안주를 너무 즐겨 뱃살이 튜브처럼 늘어나게 되었는데 여름방학 때 다이어트를 성공해서 친구들에게 주목받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몸에 살집이 있는 친구들에게는 너는 살을 빼면 더 예쁠 것이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으니 그땐 서로 젊었기에 천만다행이다. 지금은 그런 류의 발전이 우선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런 류의 발전이 아닌 측면에서 오늘 나는 어제의 나를 탈피 했을까? 나는 어제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